[카테고리:] 제도를 이해하다

  • 워드프레스란 무엇인가? 공식 교육과정 1강 쉽게 이해하기

    워드프레스를 시작하고도 한동안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워드프레스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블로그를 만드는 서비스라고 해야 할지, 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했습니다.

    직접 사이트를 만들고 글까지 쓰고 있는데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터넷에 흩어진 사용법부터 찾지 않고, 워드프레스에서 제공하는 공식 교육과정을 처음부터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과정은 Learn WordPress의 Beginner WordPress User, 즉 ‘워드프레스 초급 사용자’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워드프레스 소개부터 도메인과 호스팅, 테마, 플러그인, 글쓰기, 보안, 백업, 검색엔진 최적화까지 총 24개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수업인 Introduction to WordPress, ‘워드프레스 소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음 내용을 초보자의 말로 풀어보겠습니다.

    • 워드프레스란 무엇인가
    • CMS는 무슨 뜻인가
    • 워드프레스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 오픈소스란 무엇인가
    • 테마와 플러그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 WordPress.com과 WordPress.org는 무엇이 다른가

    워드프레스는 블로그일까, 홈페이지일까?

    먼저 가장 헷갈렸던 질문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워드프레스는 블로그를 만드는 도구일까요, 홈페이지를 만드는 도구일까요?

    답은 둘 다 만들 수 있는 도구입니다.

    워드프레스로 만들 수 있는 사이트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 개인 블로그
    • 회사 홈페이지
    • 온라인 쇼핑몰
    • 뉴스 사이트
    • 음식 레시피 사이트
    • 여행 정보 사이트
    • 온라인 강의 사이트
    • 회원제 커뮤니티
    • 작품을 소개하는 포트폴리오

    공식 강의에서도 미술관, 배관 회사, 음식 블로그, 여행 블로그처럼 성격이 전혀 다른 사이트를 예로 보여줍니다.

    겉모습과 목적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글과 사진, 메뉴, 페이지를 관리하는 도구로 워드프레스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워드프레스를 ‘블로그’라고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을 너무 좁게 보는 셈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워드프레스는 블로그를 포함해 여러 종류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워드프레스는 CMS다

    공식 강의에서는 워드프레스를 CMS라고 설명합니다.

    CMS는 ‘Content Management System’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콘텐츠 관리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콘텐츠 관리 시스템’이라고 번역해도 무슨 뜻인지 바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웹사이트에 들어갈 글, 사진, 메뉴, 페이지를 쉽게 만들고 정리하게 해주는 관리 도구

    예전에는 홈페이지에 글 하나를 올리려 해도 웹페이지를 구성하는 코드를 직접 수정해야 했습니다.

    워드프레스를 사용하면 일반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듯이 제목과 본문을 입력하고 이미지를 넣은 다음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 홈페이지를 직접 관리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 새로운 메뉴를 페이지에 추가한다.
    • 음식 사진을 올린다.
    • 영업시간을 수정한다.
    • 공지사항을 작성한다.
    • 손님이 남긴 댓글을 관리한다.

    이러한 일을 할 때마다 홈페이지 제작 업체에 연락하거나 코드를 직접 고치지 않아도 됩니다. 워드프레스의 관리자 화면에 들어가 필요한 내용을 수정하면 됩니다.

    이것이 CMS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워드프레스를 건물로 생각하면 쉽다

    워드프레스의 구조는 건물에 빗대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워드프레스는 건물을 짓고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 구조입니다.

    그 안에 어떤 공간을 만들고 무엇을 채울지는 운영자가 결정합니다.

    • 글은 건물 안에 보관하는 자료입니다.
    • 페이지는 안내실이나 소개 공간과 같습니다.
    • 카테고리는 자료를 분류하는 서랍입니다.
    • 메뉴는 방문자가 원하는 공간을 찾아가는 안내판입니다.
    • 테마는 건물의 외관과 내부 디자인을 결정합니다.
    • 플러그인은 건물에 필요한 새로운 설비를 추가합니다.

    같은 워드프레스를 사용해도 어떤 테마와 기능을 선택하고 어떤 내용을 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이트가 만들어집니다.

    워드프레스 자체가 완성된 홈페이지를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기 위한 기본 뼈대와 관리 도구를 제공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워드프레스는 코딩을 몰라도 사용할 수 있다

    공식 강의에서는 코딩을 배우지 않아도 워드프레스로 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코딩 지식이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사이트 운영은 코딩 없이도 가능합니다.

    • 글쓰기
    • 사진 넣기
    • 메뉴 만들기
    • 페이지 만들기
    • 사이트 색상 바꾸기
    • 글자 크기 조절하기
    • 테마 설치하기
    • 필요한 기능 추가하기

    다만 테마에서 지원하지 않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바꾸거나, 사이트에 특별한 기능을 직접 개발하려면 HTML, CSS, PHP, 자바스크립트 같은 지식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워드프레스는 코딩을 몰라도 시작할 수 있지만, 코딩을 알면 바꿀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는 도구입니다.

    운전을 시작하기 위해 자동차를 직접 만들 줄 알 필요가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픈소스는 무슨 뜻일까?

    워드프레스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입니다.

    오픈소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사용된 설계도, 즉 소스코드가 공개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워드프레스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고, 개발에 참여하거나 개선 의견을 낼 수도 있습니다. 한 회사가 모든 것을 비공개로 만들어 운영하는 프로그램과는 구조가 다릅니다.

    공식 강의에서도 워드프레스를 누구나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고, 코드뿐만 아니라 번역이나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개선에 참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워드프레스 프로그램이 무료라는 말과 사이트 운영에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말은 다릅니다.

    설치형 워드프레스는 프로그램 자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이트를 인터넷에 공개하려면 보통 도메인과 호스팅이 필요합니다.

    • 도메인: 사람들이 사이트에 들어올 때 사용하는 주소
    • 호스팅: 사이트의 파일과 데이터를 보관하는 인터넷상의 공간

    유료 테마나 유료 플러그인을 선택하면 추가 비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워드프레스는 무료다’라는 말은 워드프레스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정확합니다.

    도메인과 호스팅은 다음 2강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테마는 사이트의 옷이다

    워드프레스를 배우면 계속 만나게 되는 말이 ‘테마’와 ‘플러그인’입니다.

    먼저 테마는 사이트의 전체적인 외관을 결정합니다.

    • 글자의 모양과 크기
    • 사이트의 기본 색상
    • 글 목록의 배치
    • 본문 영역의 넓이
    • 머리글과 바닥글의 구성
    • 메뉴가 표시되는 위치

    사람이 같은 몸에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글과 사진이 들어 있어도 테마를 바꾸면 사이트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테마는 단순한 배경화면이 아닙니다.

    사이트의 디자인뿐 아니라 콘텐츠가 화면에 배치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고르기보다 내 사이트의 목적에 맞는 구조인지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글을 읽는 것이 중요한 블로그라면 화려한 움직임보다 다음 조건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 본문 글자가 편하게 읽히는가
    • 휴대전화에서도 글이 잘 보이는가
    • 카테고리와 메뉴를 찾기 쉬운가
    • 글이 너무 좁거나 넓게 표시되지 않는가

    테마 선택과 설치 방법은 공식 과정 3강에서 직접 확인해볼 예정입니다.

    플러그인은 필요한 기능을 더하는 도구다

    플러그인은 워드프레스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스마트폰에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기능이 필요할 때 플러그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문의 양식 만들기
    • 온라인 상품 판매하기
    • 사이트 백업하기
    • 스팸 댓글 차단하기
    • 보안 강화하기
    • 검색엔진 최적화 기능 추가하기
    • 사이트 속도 개선하기

    테마가 사이트의 옷이나 인테리어라면, 플러그인은 필요한 가전제품이나 설비에 가깝습니다.

    다만 플러그인을 많이 설치한다고 사이트가 무조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하지 않은 플러그인을 지나치게 많이 설치하면 사이트가 느려지거나 서로 충돌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은 플러그인은 보안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플러그인은 ‘좋아 보이면 일단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능이 분명할 때 선택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플러그인을 고르고 설치하는 방법은 4강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WordPress.com과 WordPress.org는 같은 것일까?

    워드프레스를 검색하면 초보자가 가장 먼저 혼란을 겪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WordPress.com과 WordPress.org입니다.

    두 사이트 모두 워드프레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이용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구분WordPress.comWordPress.org 방식
    기본 성격호스팅이 포함된 관리형 서비스워드프레스 프로그램을 직접 설치해 운영
    호스팅서비스에 포함별도로 선택하고 결제
    관리기술적인 부분을 상당 부분 대신 관리이용자와 호스팅 업체가 관리
    자유도이용 중인 요금제와 제공 기능의 영향을 받음호스팅 환경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구성
    초보자 부담상대적으로 적음알아야 할 기술적인 내용이 더 많음

    두 방식은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같은 워드프레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호스팅을 누가 맡느냐입니다.

    WordPress.com은 관리형 호스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설치형 워드프레스’라고 부르는 WordPress.org 방식은 이용자가 별도의 호스팅 업체를 선택하고 그 공간에 워드프레스를 설치해 관리합니다. WordPress.com 공식 비교 안내

    저는 WordPress.com에서 사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공식 교육과정을 따라가면서 강의에서 설명하는 화면과 제 사이트의 화면이 다르거나, 요금제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달라지는 부분도 함께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공식 강의를 단순히 한국어로 옮기는 것보다 직접 사용하는 화면에서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이번 독학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1강에서 알게 된 핵심

    오늘 배운 내용을 다섯 문장으로 줄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워드프레스는 블로그만 만드는 서비스가 아니다.

    둘째, 워드프레스는 글과 사진, 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하는 CMS다.

    셋째, 코딩을 몰라도 기본적인 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다.

    넷째, 테마는 사이트의 디자인과 배치를 결정하고 플러그인은 필요한 기능을 추가한다.

    다섯째, 워드프레스 프로그램은 무료지만 사이트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도메인, 호스팅, 유료 기능 등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직접 확인해볼 것

    1강에는 별도의 복잡한 실습이 없습니다.

    대신 내 사이트를 보면서 다음 질문에 답해보면 워드프레스의 개념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내 사이트는 블로그, 정보 사이트, 회사 홈페이지 중 어디에 가까운가?
    • 내 사이트의 글과 페이지는 어떻게 구분되어 있는가?
    • 현재 사용 중인 테마는 무엇인가?
    • 설치된 플러그인은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가?
    • 나는 WordPress.com을 이용하는가, 별도 호스팅에 설치한 워드프레스를 이용하는가?

    이 질문에 지금 당장 모두 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공식 과정의 각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관리자 화면에 보이는 메뉴들이 하나씩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결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워드프레스는 네이버 블로그와 같은 것인가요?

    글을 작성하고 발행한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다만 네이버 블로그는 네이버가 마련한 공간과 운영 규칙 안에서 사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워드프레스는 테마와 기능, 메뉴, 사이트 구조 등을 더 폭넓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워드프레스에서 이용자가 결정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도 더 많습니다.

    워드프레스를 사용하려면 코딩을 배워야 하나요?

    기본적인 사이트 제작과 글 발행에는 코딩이 필수는 아닙니다.

    다만 기본 기능으로 해결되지 않는 세밀한 디자인이나 맞춤 기능을 만들려면 코딩 지식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워드프레스는 정말 무료인가요?

    워드프레스 오픈소스 프로그램 자체는 무료입니다.

    그러나 사이트를 운영하려면 도메인과 호스팅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WordPress.com에서도 무료로 시작할 수 있지만, 원하는 도메인이나 기능을 사용하려면 유료 요금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테마와 플러그인은 모두 유료인가요?

    무료 테마와 무료 플러그인도 많습니다. 무료 버전과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유료 버전을 함께 운영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유료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며, 현재 사이트에 필요한 기능과 업데이트 상태, 지원 여부 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WordPress.com으로 시작했으면 나중에 설치형으로 옮길 수 없나요?

    옮길 수 있습니다.

    다만 사이트 구성과 이용 중인 기능에 따라 이전 방법과 난이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이전 전에는 콘텐츠와 기능을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 강의: 도메인과 호스팅

    워드프레스가 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는 도구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사이트가 저절로 인터넷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주소가 필요하고, 사이트의 글과 사진을 보관할 공간도 필요합니다.

    다음 2강에서는 자주 함께 등장하지만 초보자에게는 가장 헷갈리는 도메인과 호스팅을 공부해보겠습니다.

    “워드프레스가 무료라는데 왜 돈을 내야 하지?”

    “도메인을 샀는데 호스팅도 따로 사야 하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실제 사이트 운영자의 입장에서 하나씩 정리해보겠습니다.

  • 가난의 대물림은 언제부터 개인의 책임이 되는가

    광복절을 앞두고 배우 하영 씨의 가족사를 다룬 여러 콘텐츠가 올라왔습니다.

    그중 독립운동가 후손의 어려운 생활을 언급한 영상에서 이런 취지의 댓글을 보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의 고손쯤 됐고, 그사이 우리나라 경제 규모도 세계 최하위권에서 세계 10위권이 됐는데 아직도 가난하다면 조상이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가난한 것 아닌가.

    처음 읽었을 때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자식이나 손자 세대까지는 독립운동으로 인한 어려움이 이어졌다고 이해할 수 있어도, 증손과 고손까지 가난하다면 정말 개인의 역량 문제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그 아래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댓글도 달렸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아버지 세대에는 법조인과 공무원이 나왔고, 그다음 세대에는 금융회사 임원까지 나왔다고 했습니다.

    한두 세대가 지나면 몰라도 3세대, 4세대까지 가난한 것을 제도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환경에서 출발해 계층을 올라간 가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교육을 통해 이전 세대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된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세대가 지난 뒤에도 가난한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가난이 무엇을 물려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은 돈만 물려주지 않는다

    가난한 부모가 자녀에게 ‘가난’이라는 재산을 직접 상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통장 잔액이 그대로 자녀의 통장으로 옮겨가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 돈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선택들이 다음 세대의 출발점을 만듭니다.

    부모가 생계를 유지하느라 자녀의 공부를 살펴볼 시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학원비뿐 아니라 책값과 교통비, 체험활동비가 부담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발견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할 수 있고,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알게 되는 시기도 늦어질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차이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누군가는 부모의 집에 머물며 몇 년 동안 시험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생활비와 월세를 벌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첫 직장이 맞지 않으면 퇴사한 뒤 자신에게 맞는 일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음 달 카드값 때문에 좋지 않은 근무조건도 견뎌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한 번의 실패는 경험이 됩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실패는 회복하기 어려운 빚이 됩니다.

    도전정신이 달라서만은 아닙니다.

    넘어졌을 때 받쳐줄 바닥의 두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집에서 상속되는 것도 돈만은 아니다

    부모에게 집 한 채가 있다면 자녀가 반드시 그 집을 물려받지 않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월세를 내지 않을 수 있고, 취업 준비 기간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낮은 금리로 빌릴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만난 사람과 알고 있는 정보도 자녀에게 전달됩니다.

    어느 학교에 가는 것이 좋은지,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 집을 구할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금융상품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따라서 부유한 집안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
    • 좋은 교육과 정보를 만날 기회
    • 필요한 사람에게 질문할 수 있는 관계
    • 불리한 조건을 거절할 수 있는 여유
    • 더 나은 선택을 기다릴 수 있는 안전망

    가난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도 통장 잔액만이 아닙니다.

    • 당장 돈이 되는 일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 상황
    • 가족의 생계를 일찍 책임져야 하는 부담
    • 아프더라도 치료를 미루는 습관
    • 새로운 도전을 위험하게 느끼게 된 경험
    • 한 번의 실패가 가족 전체를 흔드는 취약성

    이런 차이는 성적표와 이력서에 적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뒤 결과만 보면 모든 것이 개인의 능력과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부유해졌다면 출발선도 같아졌을까

    “그사이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가 됐다”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실제로 많은 사람에게 계층을 올라갈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산업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고, 교육 기회도 이전보다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것과 모든 가정의 출발선이 같아졌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고속도로가 새로 놓였다고 모든 자동차가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차는 이미 목적지 가까이에 있었고, 어떤 차는 출발하기 전에 고장부터 고쳐야 했을 수 있습니다. 운전 실력이 같더라도 도착하는 시간은 달라집니다.

    경제성장의 기회를 잡는 데에도 기본적인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형편이 있어야 했고, 공부하는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이동할 비용과 머무를 곳도 필요했습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누군가는 가지고 있던 땅과 집의 가격이 올랐습니다. 그 자산으로 자녀를 공부시키고, 사업 밑천을 마련하고, 다음 세대의 주택 마련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같은 시간 동안 월세와 생활비를 부담하며 처음부터 자신의 기반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모든 가정이 같은 자리에서 가난을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성공한 사람도 있지 않은가

    물론 있습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법조인과 공무원이 된 사람도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해 의사나 기업인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노력과 성취를 출발선의 차이라는 말로 지울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선택과 노력은 분명히 삶을 바꿉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가난의 대물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은 가난한 부모의 자녀가 반드시 가난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출발한 사람은 같은 곳에 도착하기 위해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그 장애물을 모두 넘었다고 해서 장애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간 사람이 있다고 해서 계단이 평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KDI의 세대 간 경제적 이동성 연구에서도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를 거쳐 자녀의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가 확인됐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계층이동성이 비교적 높았던 배경에는 고도성장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교육 기회가 확대된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KDI는 성장 둔화와 사교육 확대,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의 증여와 상속으로 세대 간 이동성이 약해질 가능성도 지적했습니다. KDI 「한국의 세대 간 경제적 이동성 분석」

    최근 교육이동성을 살펴본 KDI 연구에서도 부모의 교육 수준이 자녀의 상위권 대학 진학 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과거보다 대학 진학률은 크게 높아졌지만, 부모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상향이동은 최근 세대에서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KDI 「세대 간 이동성에 관한 연구」

    가족의 자산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소득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 연구를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순위가 높을수록 자녀의 소득순위도 높아지는 관계가 확인됐습니다. 특히 소득보다 자산의 대물림이 더 강하게 나타났고, 최근 세대로 올수록 그 정도가 커지는 모습도 관찰됐습니다. 한국은행 연구 소개 자료

    개인의 노력과 가난의 대물림은 둘 중 하나만 참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삶을 바꿀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네 세대가 지났는데도 가난하다면

    여기에서 처음 보았던 댓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손까지 가난하다면 이제는 조상의 독립운동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 문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능한 해석입니다.

    실제로 한 사람의 현재 가난에는 수많은 원인이 들어갑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입은 손실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고, 광복 이후의 가족사와 교육, 질병, 실직, 사업 실패, 주택가격, 가족의 선택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후손이 현재 가난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원인을 전부 조상의 독립운동에서 찾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한 집안의 여러 세대에 걸친 삶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 방향의 단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세대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의 영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한 세대가 재산을 잃으면 그 자녀는 교육보다 생계를 먼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교육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세대는 안정적인 직업과 자산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축적된 재산이 없다면 그다음 세대는 다시 주거비와 교육비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각 세대가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았더라도 다음 세대에게 충분한 출발점을 만들어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가난이 네 대째 이어졌다는 것은
    네 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네 대가 각자의 생존에 많은 힘을 써야 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모든 집안의 형편을 처음으로 되돌려 놓지 않습니다.

    어떤 집안에는 자산이 네 번 상속됐습니다.
    어떤 집안에는 출발점을 다시 만드는 일이 네 번 반복됐습니다.


    “독립운동 때문에 가난하다”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여기에서 한쪽 주장만 옳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현재 가난이 모두 조상의 독립운동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에는 여러 원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같은 환경에서 출발한 사람의 삶도 서로 다르게 흘러갑니다. 개인의 노력과 판단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도 아닙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현재 가난이 전적으로 조상의 독립운동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세대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독립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과 불이익이 모두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독립운동 때문이라는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서 곧바로 “그냥 개인이 못해서 가난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건너갈 수는 없습니다.

    독립운동 이외에 다른 요인도 작용했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으로 인한 손실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가난과 국가의 책임은 다른 질문이다

    이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서로 다른 두 질문이 하나로 섞입니다.

    첫 번째는 개인의 현재 형편에 관한 질문입니다.

    특정 독립운동가의 고손이 지금 가난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그 가족의 구체적인 역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의 책임에 관한 질문입니다.

    독립운동으로 한 가족이 입은 재산·교육·생계의 손실을 국가는 충분히 보상했는가?

    이 질문은 후손이 현재 가난한지 부유한지와 별개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과거의 희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이후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됐다고 해서 가해자의 배상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재산을 사용하고, 직업을 잃고, 투옥되거나 목숨을 잃었다면 가족이 감당한 손실은 개인적인 투자 실패로 생긴 손실과 다릅니다.

    그 희생으로 세워진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손인데 왜 아직도 가난한가”라고 후손에게 묻기 전에 다른 질문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 집안이 나라를 위해 감당한 손실을
    국가는 언제, 얼마나 회복해 주었는가.

    현재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생활안정지원금도 모든 후손에게 계속 지급되는 방식은 아닙니다. 국가보훈부 안내에 따르면 일정한 생활수준 요건을 충족한 독립유공자의 자녀 또는 손자녀가 주요 대상입니다. 국가보훈부 생활안정지원금 안내

    국가보훈부가 2025년 업무보고에서 독립유공자의 최소 2대 유족까지 보상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밝힌 것도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업무보고

    다만 이것만으로 모든 독립운동가 후손의 현재 형편과 과거 희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보훈 범위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 공백을 줄이기 위한 논의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상속되지 않지만 재산과 기회는 상속된다

    배우 하영 씨를 둘러싼 논란에서 또 하나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후손에게 조상의 잘못을 대신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과, 조상이 남긴 재산과 기회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후손에게 혈통을 이유로 죄를 묻는 연좌제는 옳지 않습니다.

    현재의 후손이 조상의 행적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족관계만으로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후손에게 죄가 없다는 말이 과거의 행적과 그로 인해 형성된 재산까지 살펴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는 자동으로 상속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재산은 법적으로 상속됩니다.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와 안정된 주거, 부모가 가진 정보와 관계도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빼앗긴 재산과 중단된 교육, 가족의 부재와 생계의 부담이 다음 세대의 출발점에 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친일 행위자의 후손을 비난하는 문제와, 친일 행위로 형성된 재산이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확인하는 문제는 구분해야 합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무조건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과, 국가를 위해 발생한 희생이 제대로 보상됐는지를 확인하는 문제도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누구의 피가 흐르는가가 아닙니다.

    무엇이 어떻게 축적되었고, 무엇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는가입니다.


    부의 대물림은 인정하면서 가난만 개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부유한 집안의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고, 부모의 자산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삶을 시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집안이 기반을 잘 닦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난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졌을 때는 다른 기준을 적용합니다.

    몇 대가 지났는데도 가난하다면 이제는 개인의 능력 문제라고 말합니다.

    부가 고손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기면서, 가난이 고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두 기준을 동시에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교육과 주택, 정보와 안전망을 개인의 능력에 포함한다면 불리한 환경에서 출발한 사람이 감당한 비용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개인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책임을 묻는 일과 출발선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일은 다릅니다.


    몇 대가 지나야 개인의 책임이 되는가

    처음에는 이 댓글에 감정적으로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후손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 문제는 감정만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재의 가난을 조상의 독립운동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국가의 경제성장이 모든 가정의 출발선을 같게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가난이 다음 세대의 기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함께 성립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과 구조의 영향은 서로를 지우는 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에는 둘 다 들어 있습니다.

    광복 후 81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 과거의 영향도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군가는 재산에 재산을 더했고, 누군가는 생계를 해결하는 데 한 세대를 사용했습니다.

    어떤 집안에는 자산이 네 번 상속됐습니다.
    어떤 집안에는 출발점을 다시 세우는 일이 네 번 반복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몇 대가 지나야 가난이 개인의 책임이 되는가가 아니라,
    그 몇 대가 지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서로 다른 출발선을 얼마나 바로잡았는가.

  • 불법추심 기준과 대응 방법

    전화가 울립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입니다.

    혹시 카드회사일까.
    대출을 받은 금융회사일까.
    채권추심을 맡은 회사일까.

    받지 못한 전화가 쌓이고 문자와 알림톡이 연달아 도착하면,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는 일부터 무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내가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했으니까.

    내가 잘못한 일이니까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돈을 갚으라는 사람에게 어떻게 연락하지 말라고 하겠어.

    빚을 갚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분명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채권자는 돈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변제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빚을 갚아야 할 책임과 부당한 방법의 독촉까지 견뎌야 할 의무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채무가 있다는 이유로 협박을 받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과 직장동료에게 빚이 알려져도 괜찮은 것도 아니고, 하루의 대부분을 독촉 전화에 빼앗겨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법도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뿐 아니라 채무자의 평온한 생활을 함께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참지 않아도 됩니다

    1. 욕설하거나 협박하는 행위

    채권추심자가 채무자나 가족 등을 폭행·협박하거나 위력을 사용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돈을 갚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겁을 주거나, 공포심을 이용해 돈을 마련하도록 압박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전화가 무섭고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연락을 협박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해를 끼칠 것처럼 말하거나 공포심을 이용한다면 단순한 독촉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9조

    2. 밤늦게 또는 반복적으로 연락해 공포심을 주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야간에 전화·문자·방문을 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일으키고 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채권추심법에서 말하는 야간은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입니다.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야간 연락이나 반복 연락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경우가 자동으로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이유가 없었는지, 연락으로 인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이 생기고 생활의 평온이 심하게 침해됐는지 등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9조

    3. 가족이나 직장동료에게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하는 행위

    가족이라고 해서 자녀나 부모의 빚을 자동으로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증을 서는 등 별도의 법적 책임이 없다면, 채권추심자가 가족이나 지인에게 대신 돈을 갚으라고 요구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일으키고 생활의 평온을 심하게 해쳐서는 안 됩니다.

    “부모인데 이 정도도 못 해주느냐.”

    “배우자 빚이니 당신이 해결하라.”

    이런 말에 가족이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9조

    4. 가족이나 직장에 채무 사실을 함부로 알리는 행위

    채권추심자는 원칙적으로 가족이나 직장동료 등 관계인에게 채무와 관련해 연락해서는 안 됩니다.

    채무자의 소재나 연락처를 확인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문의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가족이나 직장동료가 채무 내용이나 신용에 관한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직장이나 거주지에서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 채무금액이나 연체 기간 등을 공개하는 행위도 금지됩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8조의3
    국가법령정보센터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9조

    5.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갚으라고 강요하는 행위

    “카드론이라도 받아라.”

    “가족에게 빌려서 오늘까지 입금해라.”

    “다른 대부업체에서 대출받아 우리 돈부터 갚아라.”

    단순히 상환 방법을 안내하는 것과, 돈을 빌려서라도 갚으라고 강요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일으키는 것은 다릅니다.

    채권추심법은 금전 차용 등의 방법으로 변제자금을 마련하도록 강요해 생활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9조

    독촉 전화는 일주일에 몇 번까지 가능할까

    2024년 10월 17일부터 시행된 개인채무자보호법에 따라, 개인금융채권의 채권추심자는 각 채권별로 7일에 7회를 초과해 추심 연락을 할 수 없습니다.

    전화뿐 아니라 방문 등 추심을 위한 연락이 횟수에 포함됩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는 횟수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 법령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하는 통지
    • 채무자가 문의한 내용에 대한 답변
    • 연락이 채무자에게 도달하지 않은 경우

    따라서 부재중 전화가 화면에 여덟 번 표시됐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법 위반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어떤 채권에 관한 연락인지와 실제 도달 여부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금융위원회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 안내

    또 한 가지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7일에 7회 제한은 개인금융채권에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개인 간에 빌린 돈이나 상거래에서 생긴 모든 채권에 똑같이 적용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반면 폭행·협박, 채무 사실 공개, 가족에게 대납을 강요하는 행위 등은 별도로 채권추심법에 따라 판단합니다.

    연락받는 시간과 방법도 제한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개인금융채무자는 채권추심자에게 특정 시간대나 특정 수단으로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일주일에 28시간 범위에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연락 수단은 다음 중 두 가지 이하를 지정해 제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 특정 주소로 방문
    • 특정 전화번호로 전화
    • 특정 전화번호로 문자 전송
    • 특정 이메일 주소로 전송
    • 특정 팩스 번호로 전송

    다만 방문과 전화를 동시에 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전화를 받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근무시간의 연락을 제한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회사 전화번호로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금융위원회 개인채무자가 알아두어야 할 FAQ

    이 요청이 빚을 없애주거나 추심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독촉 때문에 직장을 유지하지 못하고 일상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을 줄이기 위한 장치입니다.

    돈을 갚으려면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상황을 해결하려면 전화를 받을 정신과 계획을 세울 시간도 필요합니다.

    채무자를 보호하는 일이 채권자의 권리를 없애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불법추심이 의심된다면 먼저 기록해야 합니다

    두려운 상황에서는 전화를 끊는 것만으로도 벅찰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다음 자료를 지우지 말고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 전화가 온 날짜와 시간
    • 발신 전화번호
    • 문자메시지와 메신저 대화
    • 우편물과 방문 기록
    • 추심자의 소속과 이름
    • 통화 내용과 녹음
    • 가족이나 직장동료에게 연락한 사실

    그다음 어떤 채권에 관한 연락인지, 실제 채권자와 추심회사가 누구인지 확인합니다.

    협박이나 폭력 등 신변의 위협이 있다면 경찰 112, 불법사금융이나 불법추심 관련 상담·신고는 금융감독원 1332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법률상담이 필요하다면 대한법률구조공단 132에 문의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불법사금융 피해 대응 안내
    대한법률구조공단

    빚을 인정하는 것과 모든 대우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릅니다

    채권자의 연락을 모두 피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채무 내역을 확인하고, 지금 갚을 수 있는 금액과 시기를 정리하고, 필요하다면 채무조정을 알아보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무례를 견뎌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족에게 모욕당해도 되는 사람도 아니고, 직장에 채무가 공개돼도 되는 사람도 아니며, 협박을 받으면서 다른 빚을 내야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과 사람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채무는 갚아야 할 돈의 문제이지, 존엄까지 내놓아야 하는 벌이 아닙니다.


    확인된 사실·해석·확인할 수 없는 내용

    확인된 사실

    • 채권추심 과정의 폭행·협박·위력 사용은 금지됩니다.
    • 정당한 이유 없는 반복적·야간 연락으로 생활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 가족 등 법적 의무가 없는 사람에게 대신 갚으라고 요구해 생활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 여러 사람 앞에서 채무 사실을 공개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 개인금융채권의 추심 연락은 채권별 7일에 7회로 제한됩니다.
    • 개인금융채무자는 일정 범위에서 시간대와 연락 수단의 제한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해석 또는 설명

    • “채무를 이행할 책임”과 “위법하거나 부당한 추심을 참을 의무”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 이 글의 중심 해석입니다.
    • 실제 불법 여부는 발언 내용, 연락 목적과 횟수, 정당한 사유, 불안감과 생활 침해 정도 등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률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내용

    • 특정 전화나 문자 한 건이 불법추심에 해당하는지
    • 연락 횟수가 실제 법정 횟수에 포함되는지
    • 특정 발언이 법률상 협박이나 강요에 해당하는지

    개별 사안은 증거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